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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63 호 AI 변호사? 전문직 자리까지 노리는 AI

  • 작성일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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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6
이은민

  과거부터 '사'자 돌림의 전문직은 평생의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든든한 철밥통으로 여겨져 왔다. 엄청난 학업량과 치열한 국가고시를 통과해 자격을 취득하기만 하면 안정적인 평생직장과 고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굳건한 인식은 현재의 대학 입시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극심한 취업난과 불확실한 미래를 피해 조금이라도 더 확고한 길을 걷고자 전문직 관련 학과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몰리며 매년 역대급 대입 경쟁률을 보여주고 있다. 험난한 취업 시장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대신 전문직 면허증 하나만 손에 쥐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청년들의 진로 선택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전문직을 AI가 대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취업 시장에 새로운 지각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전문직을 장악한 AI

▲법조계에 진출한 AI(사진: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25640)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전문직의 철옹성에도 거대한 균열이 가고 있다. 과거에는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간 전문가만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고도의 지식 노동마저 AI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계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미 노동통계국장은 “앞으로 법조계는 진로로 정하지 말라”고 언급하였다. 로펌들이 기본 업무를 AI에게 맡기고 있어 더 이상 신입 변호사를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AI가 법조계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국가 기관 중 가장 보수적이라 불리는 사법부조차 발 빠르게 AI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관을 대상으로 판례 검색과 문서 작성 등을 돕는 재판지원 AI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이제 판사들이 일일이 문헌을 뒤지는 대신 "이 사건과 비슷한 판례를 찾아줘"라고 자연어로 질문하면 대법원 판례와 각종 법률 문헌을 종합해 단 몇 초 만에 핵심 요지를 정리해 내놓는다. 검찰 역시 대용량 사건 기록 요약과 공소장 초안 작성을 위한 자체 AI 모델 구축에 나섰다.


  효율성이 생명인 대형 로펌들의 상황은 더욱 치열하다. 대형 로펌들은 고객 데이터 보안을 위해 앞다투어 독자적인 생성형 AI 시스템을 구축하고 판례 서치, 번역, 계약서 검토 및 보고서 초안 작성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로펌 채용 시장에서는 신입 변호사들이 인공지능과 일전을 치러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초임 변호사가 밤새워 찾아야 할 법리적 쟁점을 AI가 순식간에 완벽에 가까운 문서로 완성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 중견 로펌 대표변호사는 “법률 AI가 이미 저연차 변호사들이 하던 역할을 더 빠르게 수행하고 있어, 신입 변호사를 선발하는 것보다 AI 비용을 늘려야 하는지 고민”이라며 3년 차 이하 변호사들의 일자리 축소를 우려했다. 월 수백만 원을 주고 초짜 변호사를 고용하느니 AI를 도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뼈아픈 평가 속에서 방대한 지식의 암기와 단순 서치에 의존하던 전문 영역은 더 이상 인간만의 독점적인 무기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의료 현장에 도입된 AI

(사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3519875)


  이과 분야의 최고 직군이라 꼽히는 의사도 AI에게 위협받고 있다. 엑스레이나 MRI 등 질병을 찾아내는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는 AI가 인간 의사의 미세한 오진율을 뛰어넘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발맞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개인의 맞춤형 건강 관리를 실시간으로 돕는 헬스 AI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며 전통적인 의료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증명되는 AI의 위협은 더욱 거세다. 미국 유타주에서는 AI가 의사를 대신해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허용했는데 500건의 응급 진료 사례를 분석한 결과, AI의 판단이 인간 의사의 처방과 무려 99% 일치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과도한 업무량에 쫓겨 3분 남짓한 짧은 대면 진료뿐인 인간 의사와 달리, 환자의 호소와 불안감을 시간제한 없이 끝까지 경청해 주는 AI가 공감 능력 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까지 등장했다.


  아직 전문직이 AI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은 무리다. 그렇지만 문이과를 불문하고 복잡한 추론, 방대한 데이터 분석, 공감의 영역까지 뛰어난 AI가 전문가의 입지를 서서히 좁혀오는 것은 사실이다.


줄어드는 전문직 일자리와 중산층


  지난 16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월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는 138만 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9만 8,000명이나 급감했다. 이는 겨울철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농림·어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감소세가 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업종은 지난해 12월에도 5만 6,000명이 줄어, 불과 두 달 만에 총 15만 4,000개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2013년 산업분류 개편 이후 12월과 1월 연속으로 이토록 큰 감소 폭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군으로 분류됐던 업종에서 이례적인 고용 한파가 감지된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의 세부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감소세는 연구개발(R&D)이나 건축기술·엔지니어링 분야보다 전문 서비스업에서 훨씬 가파르게 나타났다. 변호사, 변리사 등 법무 서비스를 비롯해 회계사, 세무사, 여론조사, 컨설팅, 지주회사 등이 포함된다. 이들 직종은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자문 등 반복적이고 정형적인 업무 비중이 높아 생성형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는 분야로 꼽힌다. AI가 이들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고용 수요가 줄어드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행도 최근 국민연금 가입자 행정통계를 활용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를 통해 전문서비스업, 정보서비스업, 출판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시스템 통합, 관리 등을 ‘AI 고노출’ 업종으로 분류하며, 실제로 챗GPT 출시 이후로 청년고용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인협회(FK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500개 기업 10곳 중 6곳은 대졸 이상의 전문직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채용 계획이 없다’고 못 박은 기업 비중은 지난해 하반기보다 7.3% 높아졌다. 기업들이 ‘가르쳐서 쓸 인재’보다는 당장 실무 투입이 가능한 ‘경력직 전문직’을 찾고있다는 분석이다.


  신입 사원의 채용이 AI에 대체됨에 따라 화이트칼라 진입은 점점 바늘구멍이 돼가고 있다. ‘화이트칼라=안정적 중산층’이라는 등식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AI는 화이트칼라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소 역설적인 현상이 관찰된다. 일자리를 잃거나 위협받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을 대체할 AI를 훈련시키는 인공지능 교육 담당자(AI Tutor)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머코어(Mercor)가 고용한 3만 명의 화이트칼라 프리랜서 명단에는 천문학자, 변호사, 시인, 의사가 있는데, 이들은 인공지능에 전문 지식을 제공하고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과물의 오류를 교정한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긱 이코노미의 등장이다. 과거 ‘긱 노동’이 배달이나 운전 같은 물리적 노동에 국한되었다면, 이제는 인간의 사고력과 창의성이 데이터 조각으로 거래되는 시대가 됐다. 피부과 전문의가 의료 인공지능의 정확도를 높이고, 시인이 인공지능에 서정성을 가르치는 장면은 전문가와 기술의 협업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선택에 가깝다. 노동자가 자신의 숙련된 경험을 기계에 전수하고 나면, 그 기계는 더욱 정교해져 결국 노동자의 역할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청년 고용불안정으로 다시 ‘시험’ 경쟁


▲AI 모의면접 시연 장면

(사진: https://www.viva100.com/article/20260216500043)


  전문직 취업시장의 동결에도 불구하고, 2030 청년 세대의 전문직, 공무원 등의 시험 지원율은 또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그 이유는 정량화하기 힘든 자격증, 공인영어 성적, 인턴 경험 같은 스펙 경쟁이 필요하지 않고, 기업보다 결과가 명확한 시험 중심 구조가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기업의 대규모 공채가 사라지면서 대기업 입사가 전문직, 공무원 합격보다 어렵다는 인식이 퍼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올해 전문직(감정평가사·관세사·노무사·법무사·변리사·세무사·회계사) 시험 지원자 수는 7만 3,749명으로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 5년 전인 2020년(4만 2,188명)과 비교하면 75% 이상 늘어난 수치로, 5년간 청년(19~34) 인구가 71만 명 감소한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세무사는 지원자 수가 5년간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회계사 역시 5,000명 이상 응시자가 늘어났다. 로스쿨 진학의 필수 관문인 법학적성시험(LEET) 응시자도 10년 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전문직 쏠림’에 가세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선발시험 응시 원서를 접수한 결과, 선발 예정 인원 3,802명에 10만 8,718명이 지원했다고 7일 밝혔다. 9급 공채 경쟁률은 2024년 21.8대 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24.3대 1에 이어 올해 28.6대 1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상승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노동 시장에서 채용 과정의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청년층의 불안으로 표출된다.


▲생성형 AI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군 (사진: 매일경제)


  그러나 지적 노동과 전문성마저 AI의 대체가 빠르게 일어나는 시대에 합격만을 목표로 하는 획일화된 전략이 미래의 유효한 생존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줄어드는 일자리 파이를 둔 소모적인 시험 경쟁을 넘어, 청년들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새로운 가치 창출과 AI시대의 변동을 보다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장은정, 변의정 기자